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브러햄 링컨 (문단 편집) == 개인사 == 사적으로 링컨은 외모에서는 비쩍 마르고 굉장히 매력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도회지가 아닌 시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지라 말투조차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가 약간 섞인 억양인데다 목소리도 가늘었다고 한다.[* 2012년작 영화 링컨을 보면 링컨 역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일부러 목소리를 하이톤으로 내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당대의 기록을 참고해서 재현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의 얼굴은 인신공격을 퍼붓는 일부 정적들에겐 [[고릴라]]라고 까이는 소재로 이용되기도 했다. 참고로 그 중에는 연방군 사령관이자 그의 재선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된 매클레런도 있었다.[* 매클레런은 딱히 당시 민주당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전쟁영웅 이미지와 링컨 재선 저지를 위해 후보로 옹립되어 상당한 득표를 했다.] 링컨 본인도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 있었는지, 링컨 - 더글러스 논쟁 중에 더글러스가 링컨에게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비난하자 '''"저한테 얼굴이 하나 더 있다면 잘생긴 얼굴로 하고 나왔지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라고 받아치기도 했을 정도다. 참고로 저 발언을 한 더글러스는 본래 링컨을 망신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서 시동을 걸기 위해 두 얼굴 이야기를 했다가 링컨의 위와 같은 재치있는 반격에 도리어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하여 구태여 [[아프리카]]에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 >에드윈 M. 스탠턴(1814 ~ 1869)[* 풀네임은 Edwin McMasters Stanton.] 그의 정적 에드윈 스탠턴이 한 말. 스탠턴은 더글러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링컨의 숙적으로 선거기간 내내 연설할 때마다 링컨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를 공개적으로 적대시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1920년대 괴담으로 스탠턴이 링컨 암살의 배후라는 이야기도 있다. 존 제이크의 소설, 클라이브 커슬러의 모험 소설에서는 이 시각을 깔고 있다.] 둘은 노예제에 대한 입장이 같아서 함께 더글러스를 상대해야 한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남을 가졌는데 불같은 성격의 스탠턴이 그 당시 촌뜨기 신출내기 변호사이던 링컨을 자기와 함께 묶었다는 것에 노발대발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본 링컨은 참모진들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를 했음에도 그를 남북전쟁 중 전쟁부(Department of War, 육군부)장관에 임명했다. 링컨과는 대통령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가 매우 나빴던 스탠턴은 링컨이 자신을 전쟁부 장관에 세우자 그가 자신을 모욕하기 위해 그 자리에 올렸다고 여겼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링컨은 그가 업무에 대한 의무감이 투철하다는 것을 과거 그가 변론을 하던 것을 보면서 알았던 탓에 그를 신뢰하여 그 자리를 맡겼던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후, 감격한 스탠턴은 링컨과 그의 정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링컨의 강력한 지지자로 남았다. 링컨은 "그는 부서지지 않는 바위 같이 날 지탱한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부서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할 정도로 스탠턴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http://en.wikipedia.org/wiki/Edwin_M._Stanton|#]] 훗날 스탠턴은 링컨이 피격당해 후송되자 한달음에 달려와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고 그가 사망하자 '''"이곳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는 이제 역사로 남으려 합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그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스탠턴은 링컨의 암살 후 후임자인 존슨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파면되었고, 이것은 미국 최초의 탄핵이 발생하는 계기가 된다. >외국 귀빈들에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라고 소개될 저 인물의 '''멍청하고 시시껄렁하고 쓰레기와 같은''' 연설을 듣는다면 모든 미국인들은 부끄러움으로 뺨에 경련을 느끼게 될 것이다.[br]"The cheek of every American must tingle with shame as he reads the silly, flat, and dishwatery utterances of the man who has to be pointed out to intelligent foreigners a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 - 시카고 타임즈[* 더글러스를 지지한 친 민주당, 반 링컨파 신문이었다.] 1863년 링컨의 한 연설에 대한 신문 사설의 평가다. 저 연설이 바로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왜 이게 쓰레기 연설이지? 라고 싶겠지만 게티즈버그 연설은 그 당시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졌던 연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당시의 연설문은 대체로 말을 늘리고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만연체가 유행했는데 게티즈버그 연설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핵심 주제가 확실하게 드러난 연설이었던 것. 그래서 당대 기준으로는 정말 쓰레기같은 연설이라고 혹평했고 링컨 자신도 연설 후에 내가 했지만 이건 실패한 연설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현대 기준으로는 달리 찾아보기 힘든 명연설이다.] 이렇듯 임기 내내 당시 미국 엘리트의 조롱과 멸시를 한몸에 받는 인물이었으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정치력을 발휘해서 미국을 구해냈다는 게 정말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를 눈여겨 본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소녀가 편지로 그에게 [[턱수염]]을 길렀으면 하고 조언한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에 보존되어 있는 링컨이 살았던 집에 가보면 실제로 이 편지가 그의 집무실 벽에 꽂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링컨은 그 후로 기르기 시작한 턱수염 덕분에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었고, 인자하고 따뜻한 인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후 베델을 만나게 된 링컨은 "덕분에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며 감사인사와 함께 뺨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재밌었던 우리들의 대통령''' >[[밥 돌]][* 미 최장수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평소 유머감각이 넘치며 대통령들의 위트에 관한 책을 쓴 인물이다. 평소 유머감각이 넘쳐나는 인물이지만 전쟁에서 [[퍼플 하트]] 2개와 동성훈장을 수훈한 군인이기도 하다. 1996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이기도 했다. 미 정치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꽤나 유명한 인물로 링컨의 더글러스와의 담판을 보면 알 수 있듯 링컨은 원래부터 풍자에 재능이 많았는데 밥이 이에 흥미를 느껴 대통령들의 위트에 관련된 책을 썼다.] > 암소 몇 마리를 포획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 조지 B. 매클레런[* 북군 사령관으로 링컨과 다툴 때가 많았다. 그런 그가 전장 상황을 더 잘 보고하라던 대통령을 놀려먹으려고 암소 몇 마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까지 편지로 붙인 것이다. 결국 매클레런은 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링컨과 박빙의 승부를 벌린 끝에 낙선했다. 대선 후보 등록 기간 마감 1시간 전에 매클레런이 기습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원래라면 링컨의 무투표 당선이 예정되어 있었으나(국가비상사태라는 점을 인정하여 북부민주당에서 앤드루 존슨을 부통령 후보로 보내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매클레런의 빅엿으로 링컨은 전쟁통에 선거까지 치르게 된다.] >---- > '''우유를 짜십시오.''' > - A. 링컨[* 참고로 위의 상황은 '''남북전쟁 때이다.''' 전쟁통 속에서도 위트를 통해 장군들과의 관계를 유지한 것을 보면 독특한 그만의 방식이 느껴진다.] '''평소 위트가 넘쳐났다.''' 가끔은 넘치다 못해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활력으로까지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툭하면 찾아오는 공직희망자들이나 의회와의 관계를 유지할 때 그 힘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장관 한 명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그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공직희망자 중 한 명에게 "장의사가 동의하면 관속에 들어가도 좋습니다"라고도 했었고 매일같이 공직희망자에 시달리다 전염력이 강한 병에 걸렸을 때에는 주치의를 보며 "드디어 제가 뭘 좀 나눠줄만한 게 생겼네요." 하고 빙그레 웃기도 했다. 이는 다른 고루한 상류층 자제들과 달리 어린 시절 자유분방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또 그는 계모와 농담 따먹기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이 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여하튼 출신 성분 탓에 행동에도 그다지 기품이 없고, 업무 중에도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책을 읽는 등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성격은 쾌활했지만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의 측근들은 링컨이 [[부장님 개그|시도때도 없이 썰렁한 농담을 해대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젊었을 적에는 평소에 영 맘에 안 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놀리는 말을 작은 쪽지에 써서 길가에 슬쩍 떨어뜨리고는 누군가 그걸 주워 읽고 재미있어 하는 걸 몰래 지켜보면서 즐거워 했다고 한다.(...) 어느날 쉴즈라는 사람의 나쁜 점을 지적하는 글을 익명으로 신문사에 올렸는데, 해학, 풍자적으로 쓴 글에 구독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쉴즈가 게시자가 링컨이라는 걸 알아내고서는 다짜고짜 찾아와 [[결투]][* 문자 그대로 목숨을 놓고 싸우는 결투였다. 칼과 총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상대방인 쉴즈는 군인 출신으로 총을 잘 다뤘기 때문에 링컨은 그나마 자신의 리치를 살릴 수 있는 기병도를 선택했다고 한다.] 신청까지 하고 말았다.[* 당시엔 결투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며 법으로 금지된 일도 아니었다. 마크 트웨인도 결투 신청을 받은 적이 있었을 정도. 다만 주마다 다른게 특징인 미국답게 결투가 금지된 주도 있었다.] 링컨은 결투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지간히 화난 쉴즈가 계속 밀어붙였기에 어쩔 수 없이 약속장소까지 갔다. 결투 직전에 칼을 들긴 했지만 싸울 의향이 없었다고. 다행히 링컨의 친구 한 명이 적극 중재를 해준 덕에 결투 당일 결투가 취소되어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경험이 퍽 인상적이었는지 링컨은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타인을 조롱하는 짓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또다른 일설로는 쉴즈가 정작 링컨의 큰 키와 긴 팔을 보고는 ~~오히려 자기가 겁을 먹어~~ 상대가 되지 않겠다 싶어서 포기했다는 내용도 있다. 관련 다큐에서는 이 사건 이후 링컨에 대한 5년간의 기록이 전무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중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조용한 삶을 산 듯.] 이후 결투상대였던 쉴즈와는 화해를 넘어서 아예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3개 주에서 상원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남북전쟁에서는 북군 장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 살 버릇은 뭐시기라고 그 후로도 비방문을 안 쓴 것은 아닌데, 결투사건 이후로는 그냥 혼자만 읽고 즐기다 없애버렸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링컨은 자수성가한 변호사답게 거리낌없이 남을 모욕하거나 자기 도취적인 발언을 일삼았는데,[* 사실 이 시기 미국 변호사들은 오늘날 변호사나 법률가 하면 떠오르는 깔끔하고 합리적인 인텔리가 아니라, 법정에서 아가리 파이팅(...)과 수틀리면 결투(...)로 해결을 보는 터프가이들이 대다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앤드루 잭슨]]으로, 그는 수많은 결투를 벌여 몸에 여러 개의 납탄이 박힌 채로 살았다.] 이 시점부터 변화하기 시작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시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심한 링컨의 인격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나중에 쉴즈는 링컨과 화해했고 군에 입대해 육군 준장까지 진급하였고, 남북전쟁에서 전사했다.] 성격이 제법 소심했는지 대놓고 남 앞에서는 욕이나 비난을 못하고 [[뒷담화]]를 하거나 노트에 일일이 그 사람을 욕하는 글을 잔뜩 써 놓았다고 한다. 이게 나중에 가서는 재치가 넘치는 위트로 발전한다. 게티즈버그의 연방군 사령관 '조지 미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미드의 경우는 게티즈버그 전투 승리 이후에 후퇴하는 남부연합군을 쫓지 않아서 사실상 전쟁의 종결을 방치한 측면이 있다. 물론 그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점도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뒤늦게 추격했을 때조차도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그 며칠 사이에 충분한 기회가 있음에도 놓쳤다는 게 아쉽다. 사실 어찌 보면 그 정도의 실책을 거두고도 즉각 해임이나 공개적인 비난을 하지 않은 링컨이 오히려 [[대인배]]일지도 모른다.[* 미드를 변호하자면, 당시 미드가 이끌던 군대는 북부의 남쪽전선 주력이었는데, 당시 북군은 여러 똥별들의 삽질로 남군의 [[명장]] [[리]]에게 연전연패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드는 리를 상대로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으나, 거꾸로 패배하면 오히려 북부가 남부의 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미국의 수도가 버지니아에서 약간만 더 올라가도 공격할 수 있는 워싱턴 D.C.였음을 생각하면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만약에 미드가 리를 추격해서 괴멸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남북전쟁]]이 더 빨리 끝났겠지만...] 링컨도 이 때의 일을 교훈삼기로 했던 듯 하다. 한 일화가 있는데, 대통령 취임 후, 정적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부장관에 발탁시킨 일로 그와 관계가 호전되었을 때, 스탠턴이 평소 사이가 안 좋던 번 사이드 육군장관과 사람들 앞에서 대판 싸우고 나서 링컨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사이드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씩씩거리자 링컨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더니 스탠턴이 '편지를 보내 뜨거운 맛을 보여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링컨은 '조금 전에 나한테 털어놓았던 것까지 다 포함해서 지금 당장 편지를 쓰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스탠턴은 그 자리에서 엄청난 장문의 편지를 휘갈겼는데, 편지를 읽어본 링컨이 '이제 부치기만 하면 됩니까?'라고 묻고, 스탠턴이 그렇다고 하자 링컨은 '''"그렇다면 저 벽난로 속으로 부치십시오. 분노로 쓰는 편지는 칼이 되어 상대를 찌르게 됩니다."'''라고 스탠턴을 설득했고, 스탠턴도 마지못해 편지를 벽난로 속에 던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